구분 | 비지정문화유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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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별 | 비지정문화유산 | |
지정일 | ||
분류 | 주거가옥 | |
소재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천동길 46 (신룡동) | |
내용 | 윤상원열사 생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대변군으로 활약했던 고 윤상원 열사의 생가는 임곡동 관할 신룡동 천동마을에 있다. 생가는 2004년 12월 전기합선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듬해 복원되며 윤상원과 영혼결혼식을 한 박기순 열사의 자료전시관 ‘해파재(海波齋)’로 개관했다. 윤상원 열사는 1950년 8월 19일 천동마을에서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임곡초등학교, 광주북중학교, 광주사레지오고등학교, 전남대 정치학과를 나온 뒤 주택은행 서울 봉천동 지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78년 교육지표사건이 터지자 광주로 내려와 광천공단 제조업체에 취업해 직장생활을 하며 들불야학을 시작했다. 1980년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투사회보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하고 대변인으로 활동했는데, 5월 26일 외신기자와의 회견에서 “오늘 우리는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회견 다음날 새벽, 계엄군의 도청진압으로 30살의 일기로 사망했다. 1982년 들불야학의 동료 박기순 열사와 영혼결혼식이 이뤄졌는데, 오늘날 아시아 각국의 민주화운동 시위현장에서 불리고 있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헌정되었다.
내용 출처 <광주광역시 광산구 문화관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