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치신도비

구분비지정문화유산
종별비지정문화유산
지정일
분류탑*비*불상
소재지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 427-1
내용

오자치신도비

吳自治神道碑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오자치를 기려 세운 신도비.

 

[개설] 오자치(吳自治)[1426~?]는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1467년(성종 8)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발발하자 도총사(都摠使) 이준(李浚) 휘하의 군관(軍官)으로 토벌에 참가하였다. 오자치는 난이 진압된 이후 사직을 지킨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봉되었다. 이후 의흥위(義興衛) 호군(護軍), 평안도(平安道) 조전장(助戰將) 등에 임명되었으며, 나성군(羅城君)에 봉해졌다. 벼슬은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76년(성종 17) 부친 봉양을 이유로 고향인 나주로 낙향하였으며, 이후로는 행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사후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건립 경위] 오자치신도비(吳自治神道碑)는 오자치의 행적과 뜻을 기리기 위해 1913년 나주오씨(羅州吳氏) 후손들에 의해 세워졌다. 

 

[위치] 왕동마을회관 근처에 있는데, 후손들에 의해 잘 정비되어 다른 비석들과 함께 관리되고 있다. 인근에는 오자치의 초상을 보관하던 원당영각(元堂影閣)이 있다. 

 

[형태] 매우 단순화된 귀부(龜趺) 위에 비신을 올렸으며, 그 위에는 이수(螭首) 대신 거칠게 다듬은 가첨석(加檐石)을 올렸다. 비명은 송병선(宋秉璿)이 지었는데, 이로 보아 비명의 작성과 비를 세운 시기 사이에 시간적 격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